










윤 할아버지는 어김 없이 로타리 낚시회를 찾았다.
비슷한 연배의 가게 주인은 "왜 또 와"라고 심드렁하게 내뱉으면서도 손은 어느새 커피를 탄다.
윤 할아버지는 주인의 핀잔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라일락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윤 할아버지가 종묘광장공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14년째 반복되는 아침 풍경이다.
7212번 녹색 지선버스. 버스는 할아버지가 타기 편한 위치에 정확히 멈춰 섰다.
윤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는다. 운전기사도 이미 그를 잘 알고 있는 눈치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삶이 흐트러지는 것이 두려워서 일까.
버스에 탄 그는 고개도 잘 돌리지 않고 묵묵히 내릴 정류장만 기다렸다.
윤 할아버지는 14년째 같은 시간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출근'을 한다.
아내가 폐섬유증으로 꼬박 7년을 앓다 세상을 떠난 게 2000년.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출근'은 휴일도 없이 계속됐다.
공원에는 일찍 '출근'한 또래 노인 30여명이 장기와 바둑을 두거나 옆에서 훈수를 두면서 구경하고 있다.
평소 윤 할아버지는 밥에 물을 말아 아침을 해결한다. 이날도 이틀 전 직접 지은 밥에 물을 말아 열무김치를 얹어 먹었다.
또 보통 때 점심은 인근 슈퍼에서 1050원을 주고 컵라면을 사 먹거나 노점에서 1000원짜리 빵을 사 먹는다.
노점 간이 의자에 앉아 30여분 동안 커피를 마시고 다시 공원을 한 바퀴 돈다.
6개월 만에 만난 동생과 눈인사를 한 뒤 윤 할아버지가 앞장서 걷기 시작한다.
10여분을 걸어 도착한 한 귀금속 상가 앞. 5000원짜리 뷔페형 기사식당. "맛있는 것 사드린다니까 여기는 왜 왔데?"
동생의 핀잔에도 윤 할아버지는 "여기가 맛있어"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간다."식사는 잘하죠?",
"요새 몸은 어때요?", "애들은요?" 쏟아지는 동생의 안부에 윤 할아버지는 "괜찮아, 괜찮아"라고 짧게 답한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 속의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짧은 동생과의 해후를 마치고 윤 할아버지는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공원은 오전보다 많은 10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장기를 두는 대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서서 30여분 동안
말 없이 장기를 구경한다. 장기를 구경하다 힘에 부치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가 가까워졌다.
말 없이 일어나 공원을 빠져나온 윤 할아버지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다.
그나마 막내딸은 가끔 얼굴을 보지만 다른 자식들은 연락이 닿은 지 오래다. "그놈 얘기는 꺼내지도 마."
아들 얘기를 묻자 손사래를 친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차마 더 묻는 것도 실례다 싶다.
병원이 보이는 골목에 들어서자 말 없이 걷던 할아버지가 뒤따르던 기자에게 몸을 돌리며 인사를 건넨다. "내일 또 봐."


"낮에는 방에 못 있어. 심심하고 적적하잖아.








파고다공원 주변에 멋쟁이 할아버지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길거리 구둣방'인데요.
"영정사진은 안 찍으세요?" 얘기를 꺼내자 어깨에 하얀색 천을 두르고 이발을 하고 있던

명실공히 낙원동 대표 장수 식당인 '유진식당'은 할아버지들의 단골메뉴인 설렁탕, 돼지국밥을 수년째 3000원에 묶어 두고 있습니다. 3대째 이어 온 이 집은 196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국밥장사를 하던 할머니부터 아버지에 이어 지금은 사남매 중 삼남매가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에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가게가 즐비한 곳이 바로 이곳 낙원동입니다. 일명 '먹자골목'으로 통하는 종로 파고다공원 뒤편이죠. 가게마다 1980년대 후반쯤에 멈춘 듯한 정경은 낯설면서도 낯이 익습니다.
파고다공원 후문에 위치한 낡은 건물. 이 건물 2층에 자리한 '원각사 무료 급식소'. 이곳에선 15년 동안 휴일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공짜로 대접하고 있다.
식사 도중에는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렇게 배식을 시작한 지 5분이 지났을까.
'수련집'과 '부산집'의 대표 메뉴는 각각 가정집 백반과 동태백반. 가격은 3000원으로 똑같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지닌 두 식당의 음식은 '집밥'과 가장 가깝다는 점이 매력이다.
그동안 밀가루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파고다 공원 동문 근처에 있는 '부자촌'은 2000원대의 콩국수·냉면·짜장면 등 면요리의 가격을 10년간 단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낙원상가 옆 순대국밥 골목에는 '강원도집', '광주집', '전주집', '충청도집', '호남집' 등 전국 팔도의 지명이 다 있다.
서울 종로구의 낙원악기상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 서너 명이 이 건물 엘리베이터를 향해 총총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곳 실버영화관에서 어르신들은 팍팍한 일상과 권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여유를 누립니다. 365일 운영되는 이 영화관은 하루 네 번 국내외 유명 고전영화를 상영합니다.
무대에 올라 부르는 노래 한 소절로 '여흥'을 즐기는 곳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같은 60~70대들은 젊었을 적 고생을 많이 하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즐겁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좋지"라고 말했습니다.
파고다공원 후문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길바닥과 건물 외벽을 진열대 삼아 옷을 파는 좌판이 늘어섰습니다.
옷을 판 할아버지도 기쁘긴 매한가지.
파고다공원 서문 주변에는 포장마차형 점집 10여개가 담벼락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정모(76) 할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10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울 낙원동에는 1970년대 음악다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추억더하기' 카페가 있다. 원래 소규모로 운영되다가, 지난 5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의 음악DJ 장민욱(58)씨가 앉아 있는 작은 룸 안에는 2700여장의 LP판이 벽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는 1976년 영등포에서 음악DJ 생활을 시작해 4년 전 낙원동에 터를 잡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파고다공원 뒤편 상가 입구에 자리를 잡은 자판기 앞. 이곳은 바로 공원을 찾는 할아버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파고다 공원 골목길에 노천카페 격인 자판기가 있다면 한 블록 지나 종묘공원 인근에는 '커피 할머니'가 있습니다.



술로 세월을 낚는 분들이려니 싶다가 문득 실상이 궁금해 근처 편의점을 들렀다."가장 잘 팔리는 거요?
젊은이들이 '수지앓이'를 한다면 이곳 할아버지들은 '김용임'에 푹 빠져 있습니다. 파고다공원에서


한선화(70·가명·인천) 할머니는 지난 3월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세 아이를 둔 가정주부
학력이 낮고 건강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이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이 '성매매'이며 나이와

"'그 섬, 파고다' 시리즈에서 노인에 대해 관심 있게 다루는 것을 보고 제보하러 왔다"며 편집국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