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엔 안가... 가봐야 전부 노인네들뿐인데 거길 왜 가. 내가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다고.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
파고다공원과 종묘광장공원 사이에 있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 일대. 이곳이 바로 '종로 쪽방촌'이다.
6·25 때는 난민주거지로, 전쟁 이후에는 1000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일'하던 대규모 집창촌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 집창촌이 철거·폐쇄되면서 일시적인 거주 공간인 쪽방촌이 형성됐다. '종로 쪽방촌'에는 현재 650여명이 살고 있다.
이 중 220여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혼자 사니까
저 궁상이란 말, 제일 듣기 싫었지
박 할아버지는 쪽방촌의 자타공인 터줏대감. 20대 중반부터 45년째
약 3.3㎡(한 평) 남짓한 크기의 쪽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부딪힐 만큼 좁은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이 앉으니 쪽방이 가득 찼다.
'쪽방에 혼자 살아서 꾀죄죄하다'는 말이 듣기 싫어 이날도 몇 벌 없는 옷 중에서 가장 밝고 깔끔한 옷을 챙겨 입었단다.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옷에서 냄새가 날까 봐 빠듯한 살림에도 빨래를 할 땐 향이 짙은 섬유유연제를 빼놓지 않는다.
"낮에는 방에 못 있어. 심심하고 적적하잖아.
죄 없는 텔레비전만 봐야 하는데 그게 제일 싫더라고.“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5시쯤 집을 나서 삼청공원을 찾는다.
"가면 동네 여자들 클럽이 있다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라고 말하며
연신 웃음을 짓는다. 할아버지의 양손 손톱에 들인 봉숭아 물도 주인 아줌마의 작품이다.
또래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파고다공원이나 종묘광장공원은 거의 가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가봐야 전부 노인네들뿐인데 거길 왜 가. 내가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사람들
이랑 어울리고 싶다고.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라고 반문한다.
"이 동네에 평생 살 수는 없잖아. 10년 안에는 쪽방을 벗어나야지."
전세자금을 마련해 공기 좋은 외곽으로 이사하는 것이 박 할아버지의 꿈이다.
1968년 9월27일 속칭 '종삼'으로 불리던 종로3가 일대의 골목 어귀마다 100촉짜리 백열등이 달렸다.
이른바 '나비작전'으로 불리는 '종로3가 홍등가 정화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불빛이었다.
손님이 종삼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진을 치고 있던 시·구청 공무원과 사복경찰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름이 뭐요?", "직업이 뭐요?", "전화번호가 뭐요?" 등 쏟아지는 물음에 종삼을 찾은 남성들은 줄행랑을 쳤다.
이 같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자 종삼을 찾는 남성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나비작전은 10월5일 새벽 5시 시작된 철거작업을 끝으로 일주일여 만에 막을 내렸다. 윤락녀들이 떠난 빈자리는 이후
하루 8000원짜리 쪽방을 찾아든 사람들로 채워졌다. 40여년 전 이렇게 형성된 '돈의동 쪽방촌'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