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구성된 14대 국회때 위안부 관련 발의는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 단 1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정부가 제안한 것이었다. 15대ㆍ16대 때도 위안부 이슈는 뒷전이었다. 각 1건씩만 발의됐다. 8년 동안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딱 두 번 논의된 것이다. 15대 때 이미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16대 때 역시 이 의원이 발의한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17대 들어 위안부 관련 법안 발의는 6건을 기록했다. 이 중 2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18대 역시 총 6건이 발의돼 2건이 처리됐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현재까지 위안부 관련 법안은 총 16건이 발의돼 6건이 통과됐다. 현재 국회에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 등 5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처럼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이다. 국회 관계자들은 국회 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책 소위원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지난해 6월20일 여성가족위원회 산하 '위안부' 소위가 구성됐다. 소위가 생길 당시는 아베정권의 역사왜곡 발언과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당시 여가위 회의록(6월5일)을 보면 간사였던 김희정 현 여성가족부 장관이 "우리 위원회에서는 최근 일본의 위안부 관련 망언ㆍ망동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종합대책, 아울러 국제 공조활동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하기 위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책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간사 간에 합의를 했다"고 소위 설치 취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 측의 망언ㆍ망동과 더불어 김화선ㆍ황금주 등 피해 할머니들이 잇따라 눈 감은 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와 별개로 국회 차원에서 여성가족부와 외교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위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여가위 수석전문위원실에 따르면 위안부를 주제로 한 간담회는 이제껏 단 한 차례 열렸다. 지난해 8월 개최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역사적 자료 검토 및 대응방안' 간담회가 그것이다. 또 지난해 7월과 올 2월 여가부로부터 위안부 관련 업무보고, 지난 8월12~22일까지 의원회관 2층 전시장에서 진행된 '앙굴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한국만화기획전: 지지않는 꽃' 순회전이 소위 활동의 전부다.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공통의 관심사가 아닌 의원 개인의 관심사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활동이 저조하다는 지적에 대해 H의원 보좌관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H의원은 2012년 6월부터 한 달에 1번은 수요집회에 꾸준히 참가했다고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추진하는 위안부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운동'에 동참하자는 취지로 국회의원 전원에게 서명을 촉구하는 친전(親展)을 5~6차례 돌리기도 했다. 이 중 250여명에게 서명을 받아 정대협에 전달했다고. 정대협은 H의원이 전달한 국회의원 서명을 8월13일 수요집회 때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국회가 낸 법안이 대부분 결의안이라는 점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호소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선언문에 그치는 결의안 보다는 할머니들의 복지, 위안부 운동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힘이 작동해야 하는 부분은 정치권이 나서줘야 한다는 얘기다. 2005년 개정된 생활안정 지원 관련 법안은 피해 할머니들의 복지에 있어 국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 이 법안의 통과로 이듬해부터 여가부에서 할머니들에게 1인당 연간 1230만원에 해당하는 간병비를 지원하고 있다.
법안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2012년 국회를 통과한 기념사업 관련 법안 덕분에 박물관 건립 등 기념사업 추진이 수월해졌다고 평가한다.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반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관 박물관 건립, 역사교육, 기록물 관리 등 기념사업 종류가 다양한데 기념사업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적시해놓은 점,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이나 역사관ㆍ박물관 운영비 지원 등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했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이자스민 의원실 관계자는 "기념사업의 범위를 제한해 버리면 오히려 활동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며 "기본적인 틀만 마련하는 것이 법이고 집행은 하위법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다는 점에 대해 지적이 잇따르자 박홍근 의원 등 12명은 지난 3월 관련법의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기존 법안이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에 대한 설치ㆍ운영비 지원을 명시하고 있을 뿐, 추도공간의 조성 등의 위령사업과 위안부 피해자 사료관 및 박물관의 건립에 대한 지원내역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단계자들은 '할머니 인권'에 대한 법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명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즉 국적ㆍ인종ㆍ성ㆍ종교ㆍ성 정체성ㆍ정치적 견해ㆍ사회적 위치ㆍ외모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금하는 것이다. 미국ㆍ독일ㆍ영국 등이 개별적으로 이를 규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나치를 공공장소에서 찬양하는 발언을 하면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표현의 자유와 부딪치는 측면이 있지만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고 제한하는 것인데 이 같은 법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간베스트 등 온라인에서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며 "국민의 자유로운 발언에 재갈을 물리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되지만 피해자 인권을 위해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8월 별세한 이용녀 할머니 기사에 도를 넘은 악플들이 달려 유족들이 경찰에 고발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당시 이 할머니의 손녀 서미영(39)씨는 "피해자인 우리 할머니에게 심한 말을 써서 이제는 돌아가신 분을 욕하는 일을 더는 두고볼 수 없다"며 "경찰에 고발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피해 할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 심심찮게 발생하자 위안부 소위 위원장인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일제의 지배 및 친일행위를 찬양하거나 항일투쟁을 비방하는 행위 및 독립운동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일본 식민통치 부정 처벌법'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위안부 문제의 주무부처인 여가부와 외교부 등이 제대로 역할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소위에서 활동한 인재근 의원은 여가부 등 관련 부처의 기록물 관리를 감시하는 데 힘을 쏟았다. 보건복지부를 거쳐 여가부가 피해자 등록 절차 중 하나로 '신청서'를 받고 있지만 일부 문서는 누락되거나 정리가 잘 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 의원의 보좌관은 "신청서에는 동원 시기와 장소, 동원당시 상황 등 일본군의 만행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중요한 국가 기록물인데 관리가 소홀하다"면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안부 리포트 기획취재팀 = 김동선 팀장, 김민영·주상돈·김보경 기자 matthew@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