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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 그간 뭐했나 - 나라없는 백성이 제일 불쌍해

 눈 감기 전에 한을 풀어달라.
 1991년 오늘(8월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힘겹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고통스런 과거사가 떠오르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던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그간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동영상 출처:여성가족부
*인터넷 익스플로러 8이하의 환경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에 나선 지 딱 23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바라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발 후퇴한 양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재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해 한국 국민과 할머니들의 공분을 샀다.

일본 정부의 이런 행태는 일정 부분 한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은 지적한다. 한일관계가 냉각되길 바라지 않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문제 제기가 해결은커녕 일본의 적반하장식 태도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간 우리 정부의 활동을 짚어본다.
 일본에 사과요구할 때마다 발목잡는 한일청구권 협정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최소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 '일본의 전쟁 책임문제'가 한국 내에서 거론되면서 강제 연행자의 명부 작성을 일본 정부에 협조 요청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한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에 이미 모든 보상을 다 끝냈다며 '보상에 대신하는 어떤 조치'를 생각해보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 보상과 사과'를 요구할 때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단골 카드로 꺼내든다. 식민지 지배 배상 요구는 1965년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김종필-오히라(大平正芳) 각서'와 한일기본조약, 한일청구권 협정 등으로 일단락됐다는 주장인 것이다. 실제 한일청구권 협정 협상 대화록에는 우리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묵살한 대목도 확인된다. 2005년 공개된 당시 협상 문서를 살펴보면, 개인 청구권에 대해 일본 측이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하라는 말인가"라고 묻자 한국 측은 "우리는 나라로서 청구한다"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우리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측은 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상태에서 조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국제법상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해 청구권 협정(제2조)의 종료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또 개개인의 인적 피해는 이 같은 국가 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인 보상을 했다는 논리도 뒤따르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도화선이 돼 1991년 9월 정부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듬해 1월 정부는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설치하고 전국의 시ㆍ군ㆍ구청에 피해자 신고센터를 개설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정부 진실 규명과 사과는 받되 배상 청구는 않겠다고 한 후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입주권 등을 지급한다. 김대중 정부 들어 피해자들에게 한꺼번에 315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지불하고 위안소에 관련한 일본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두 정부 모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보상 쪽에 무게를 두고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선 과거 문제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정부의 이런 입장은 미묘한 한일관계에서 자칫 외교 갈등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3ㆍ1절 기념사에서 '배상'이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외교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 않는 정부 행태는 위헌 정부가 문제 해결에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다. 2011년 8월30일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8명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들이 일본 정부에 갖는 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됐는지를 놓고 해석상 이견이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은 우리 정부의 행태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송도자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는 "이 판결은 정부가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얼마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등한시했으니 노력하라는 판결이 나오는 것 자체가 씁쓸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교수)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양국 간 이견이 있을 경우 재협상ㆍ논의를 하도록 돼 있다"며 "위안부 문제, 과거사, 피해보상 문제 등에 대해 양국의 의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니 노력하라고 한 것"이라고 헌재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지치는 할머니들 지난 4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회의에 반색하기보다는 보여주기식 행태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박한용 교수는 "'노력은 했는데, 결과는…'이라고 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해결이 지지부진한 사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하나 둘 눈을 감고 있다. 올 들어서도 황금자ㆍ배춘희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피해자 등록을 한 238명 중 55명만 남았다. 국내외로 증언활동을 벌이는 할머니들도 지쳐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자와 만난 김복동(88) 할머니는 "잊어뿔만 하면 그 말을 되새기고 되새기고 하니깐 화가 난다. 늙은 사람은 과거사를 다 잊어뿌려야 하는 기라. 묻는 사람은 처음 묻제. 우리는 앵무새마냥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할머니는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 때 해결 못한 거 딸이 대통령이 됐으니깐 딸이 해결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계속 헛소리를 한다"고 성토했다.

아픈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는 것은 할머니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다. 지난 6월에 만난 이수산(88)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이따금 울먹였다. "할매 오늘 또 잠 못 주무시겠네…." 누군가 한 명이 말했다. "할머니가 이야기하시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에요." 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모임 대표가 귀띔했다.

"100년, 200년 안 죽고 살아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꼭 받겠다." 이수산 할머니의 바람은 마지막 생존 할머니들의 하나같은 소원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을 국민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본지의 설문조사(8월13일자 8면 참조) 결과,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부의 노력을 국민들은 10점 만점에 3.1점에 불과한 낙제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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