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고노담화'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 담화는 한동안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베 정부의 검증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고노담화 흔들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가 '강제 연행 증거' 운운하며 고노담화 이전으로 시계추를 돌려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고노담화와 아베의 검증에 대해서 동북아역사재단이 발행한 자료와 남상구 연구위원의 설명을 토대로 조목조목 해석을 해봤다.
1이른바 종군위안부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 담화는 일본군과 관헌(정부)이 위안부 모집, 위안소 설치ㆍ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은 다수의 여성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비쳤다. 50년 전 과오에 대해 왜 갑자기 일본 정부가 입장을 표명했을까.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등 3명의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실태조사에 들어간 일본 정부는 방위청, 외무성 등 관계기관의 자료 조사와 피해자 16명과의 면담을 거쳐 담화를 내놨다.
지난 6월 나온 고노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 발표 전 한일 정부 간 사전 교섭이 있었다'거나 '한국 측과 문안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문안 조정의 예를 든 사례는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모집에 관해 일본 측이 군의 '의향'이란 표현을 쓴 것을 한국이 '지시'로 바꿀 것을 요청해 최종적으로 '요청'이라고 적혔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한일 간 교섭과 문안 조정이 위안부 문제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고노담화의 신뢰성에 훼손을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고노담화가 나온 뒤 일본정부는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설치했다. 하지만 아시아여성기금은 외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한 시민단체의 반발을 일으켰다. 피해자 1인당 지급할 기금 500만엔 중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모금한 보상금(200만엔)이 문제였다. 민간 모금을 통한 보상금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의미가 아닌 위로, 연민 등의 뜻이 담긴 인도적인 차원의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이 기금을 거부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7명의 피해자들이 기금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일본 정부는 61명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고노담화 발표 후 일본 중ㆍ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시작됐다. 1994년부터 사용되는 고등학교 교과서 중 1개 출판사를 제외한 모든 교과서와 1997년부터 사용되는 모든 중학교 교과서에 위안부에 관한 내용을 기술했다. 그런데 1996년 위안부 기술 삭제를 요구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들어진다. 발족 당시에는 78명이었던 회원이 1년 만에 200명으로 늘어났다. 몇몇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선 위안부 문제의 교과서 기술 삭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 후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한 역사교과서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국과 중국이 합동으로 일본 측에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2001년에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3종만이 이 문제를 기술했다. 2005년에는 2개 교과서로 축소됐다가 2011년부터는 검정을 통과한 7종 중학교 교과서 모두에 위안부 관련 서술은 사라지고 만다. 고등학교의 경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본사 교과서 15종 중 13종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기술돼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일본사는 선택 과목이다.
남 연구위원은 "만약 아베 총리를 만나면 기본적으로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혔으니 '강제동원 외에 고노담화를 통해 밝힌 그 밖의 내용들( 5ㆍ7ㆍ9 )은 모두 인정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