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 집'에서 만난 길원옥(87)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집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길 할머니가 피해자 신고를 한 것은 2002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집회 때마다 한가운데 자리를 지켜온 길 할머니는 "예전엔 내 고향, 내 지방 사람들도 가시눈으로 봤는 걸"이라며 지난날을 돌이켰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하라" "배상하라"를 외친 것도 어느 덧 22년째. 초창기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주축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 현수막과 확성기 하나를 들고 외로운 싸움을 했지만, 지금은 수백명의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모여 수요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에 항의하기 이전에 정조 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와 먼저 싸워야 했다.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받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 정대협에는 "부끄럽다"며 운동을 멈추라는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열리는 수요집회에서는 "뭐 저렇게 창피한 짓을 길거리까지 나와 떠드느냐"는 일부 행인들의 소리도 들어야 했다. 피해자 할머니들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1990년대 수요집회를 하다가 한 할아버지가 내 멱살을 잡으며 '우리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 안 됐는데 부끄러운 과거를 무엇하러 꺼내느냐'고 한 적도 있다"며 "이때는 할머니들도 자신이 피해자였다고 신고하고 증언했음에도 스스로 수치스럽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할머니들도 자신감을 찾게 됐다. 윤 대표는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바뀐 시민과 할머니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수요집회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윤 대표는 "시위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외면'이나 '멸시'에서 '감사'와 '지지'로 바뀌면서 할머니들도 '스스로 부끄워할 문제가 아니다'며 기존 사고를 깨트렸다"며 "이에 용기와 힘을 얻은 할머니들이 더 당당해졌고 이런 모습이 또다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은 할머니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거나 ' 전쟁의 아픈 기억을 꺼내 우리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길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 개근자'이자 평화의 집에 있는 김복동(88) 할머니도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커다란 성과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발언대에 서고, 할머니들을 위한 시와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김 할머니는 수요집회의 어제와 오늘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차도 없었어. 몸빼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걷거나 버스 타고 (집회 장소로) 이동했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 다들 개인 주머니 털어서 했다니까. 지금은 (피해자들이) 강제로 끌려간 거라는 인식이 돌아오니까 협조적이지. 어제는 1000명도 넘게 왔어. 후원자들도 많이 생기고."
할머니들이 연로해지면서 정대협 실무자들은 개인 승용차에 할머니들을 태우고 집회 장소를 오고 갔다. 하지만 두 할머니를 태우고 각종 장비까지 싣기에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부 기업들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기업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때도 시민들이 할머니들을 도왔다. 사연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너나 할 것 없이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마련된 '희망 승합차'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두 할머니를 태우고 집회 현장을 오간다. 희망 승합차에는 기부자 200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2012년 3월8일 길원옥ㆍ김복동 할머니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대대적인 선언을 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피해 배상금을 받으면 그 돈을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 데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배상금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할머니들이 전면에 나서 전쟁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이른바 '나비기금' 후원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외국에 나가서 보니까 우리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게 아니더라고. 외국에서도 당한 여자들이 많아.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굉장히 살기 힘들다고 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싶어서 우리끼리 의논을 했지. 그래서 기금을 한번 모아보자. 이름은 '나비'로 짓자고 했지. 나비는 1년 동안 땅에서 고생하다가 날개를 펼치고 나오잖아. 우리도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날갯짓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커피 한 잔만 참아도 이런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니까 여러분이 나비기금 후원회원이 돼 주면 어떻겠습니까' 했더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더라고."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할머니들이 선언을 한 지 2년 반이 흐른 지금, 나비기금엔 약 1억5600만원이 모였다. 지금까지 이 기금은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 가족(2만3200달러),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9400달러), 열악하게 운영되고 있는 재일조선학교, 미군 기지촌 피해 여성 등에게 전달됐다.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은 지난 6월 수십년간 내전을 벌이고 있는 콩고를 방문해 나비기금을 전달했다. 그는 "30여개의 반군 조직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고 있다"며 "반군들은 나무 땔감을 구하거나 물을 뜨러 온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쟁의 수단'으로 여성들을 성폭행한다. 반군들에게 납치당해 한 달간 감금된 채 성노예로 살았던 소녀들도 있단다. 현대판 '위안소'인 셈이다. 피해를 당하더라도 DNA 검사가 불가능하고, 용의자 색출과 처벌 등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을 상대로한 범죄는 갈수록 만연해지고 있다. 2012년 콩고 내 성폭행 피해 건수는 총 7075건으로 하루 20건꼴이다.
이 같이 전쟁과 여성의 인권 문제는 끝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또한 전쟁 성범죄를 막으려면 위안부 문제와 책임 규명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내 최초 위안부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것은 침략전쟁을 행한 일본군이 일으킨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못 박고 "현대사회에서 군에 의해 자행되는 성범죄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는 중대한 과제"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단체의 꾸준한 노력에 국제사회가 응답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1994년 유엔(UN)의 국제인권법률가협회(ICJ)가 낸 '위안부-끝나지 않은 시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와 UN 인권위원회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두 보고서를 한 단계 발전시킨 '맥두걸 보고서'까지 국제사회는 일본 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맥두걸 보고서는 '위안소'의 본질이 '강간소'였음을 지적하고 ▲노예제의 금지 ▲전쟁범죄로서의 강간 금지 등에 관한 당시 국제법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적용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또한 2007년부터 유럽연합(EU)과 미국 하원, 네덜란드 하원, 캐나다 하원, 호주 상원 등 세계 각국의 의회에서 일본에 대한 권고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가 국제 이슈로 떠오르면서 얻게 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위안부 문제를 통해 국가의 무력 분쟁 속에서 여성의 인권 문제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게 됐다"며 "한일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결과적으로 전시 성폭력 처벌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가 국제형사재판소(ICC) 규정에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로 성문화됐으며, 국제전범재판소 역시 관련 가해자를 처벌하고 있다.
20년 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운 피해자들이 전 세계에 전파하는 '용기의 메시지'도 있다. 피해자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숨겨야만 했던 사실을 사람들 앞에 당당히 밝히고, '나는 잘못이 없으며 명백한 피해자'임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 연구위원은 "단순 피해자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여기에 전 인류적인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로 보는 시각은 위안부 관련 사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남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2차 대전 당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실상이 얼마나 잔혹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보여줄 수 있다"며 "앞으로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다신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위안부 리포트 기획취재팀 = 김동선 팀장, 김보경·김민영·주상돈 기자 matthew@asiae.co.kr
사진 = 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