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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사람들 - 문화예술이 외면하는 위안부

위안부 이야기는 문화계서도 찬밥 그 어이없는 삶은 왜 조명도 받지 못할까 홀로코스트 영화는 1000편에 달하는데 위안부 관련 영화는 10편도 안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어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성순 한국정신대연구소장의 지적처럼 위안부 관련 한국영화는 채 10편이 안 된다. 그마저도 대부분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로 이를 제외한 상업영화는 전무한 상황.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1991년)에 나선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위안부라는 소재는 영화계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비단 영화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제작하고 연출한 위안부 관련 연극과 뮤지컬도 각각 4편과 1편에 불과하다. 또 '위안부'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도 고작 2편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위안부 관련 문화계 현황 당장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쉰들러리스트'(1993년)와 '인생은 아름다워'(1997년)가 대표적이다. 모두 세계적으로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반면 위안부를 주제로 한 영화를 꼽으라면 딱히 연상되는 작품이 없다. 대중에게 각인된 영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가 아예 한 편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위안부 관련 영화는 '에미이름은 조센삐였다'(1991ㆍ독립), '낮은 목소리'(1995ㆍ다큐), '숨결'(1999ㆍ다큐), '깨진 침묵 : 한국의 위안부들'(2000ㆍ다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ㆍ다큐), '소리굽쇠'(2012ㆍ독립), '그리고 싶은 것'(2013ㆍ다큐) 등이 전부다. 그나마 현재 '귀향'과 '수요일(가제)' 등이 위안부를 소재로 해 제작 단계에 있다.
투자자 ·배급사 '영화 흥행 어렵다' 안다뤄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상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한국영화가 183편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안부는 영화인들에게 철처히 '소외'된 소재임에 분명하다.그러나 영화계 인사들은 위안부를 소재로 제작된 상업영화가 전무한 것이 영화인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제작환경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안부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거나 제작 중인 사람들은 투자자와 배급사를 유치하기 어려운 데다 배우들마저 출연을 꺼리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고 토로한다. 영화 '수요일'을 제작 중인 김영우 가우자리 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투자자, 배급사, 배우들이 선뜻 나서기를 꺼려한다. 소재 자체가 어둡고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이렇다 보니 독립영화나 다큐영화 등 초저예산 영화만 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조달한다고 해도 배급사 유치라는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2184개 스크린 중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보유한 스크린이 91.3%(1996개)를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멀티플랙스를 찾는 관객 비중도 무려 98.4%에 달했다. 멀티플렉스를 보유한 배급사를 잡지 못하면 기껏 영화를 찍어놓고도 관객에게 보여줄 수조차 없는 현실인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일주일에 시나리오 3~4개를 읽는데 지난 1년간 위안부를 다룬 시나리오는 딱 한 편 받아봤다"며 "옥석을 가려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위안부라는 소재 때문에 투자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나 팩트가 갖고 있는 공분, 감동, 울림이 버무려진 작품을 고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 배급뿐 아니라 섭외도 첩첩산중이다. 한류붐이 일면서 일부 배우들이 위안부 관련 영화 출연을 고사하기 때문이다. 한류 교두보 중 하나인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라면 자칫 일본을 성토하는 영화에 출연한 것이 향후 일본 진출에 발목을 잡을까 염려한다는 것이다.
연극·뮤지컬 등 무대예술도 차가운 반응은 마찬가지
이 같은 현실은 연극이나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현재 위안부를 소재로 한 국내 뮤지컬은 '꽃신'이 유일하다. 한국뮤지컬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제작 편수는 라이선스와 창작 뮤지컬을 통들어 200여편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작품은 단 한 편뿐인 것이다.

'꽃신'은 제작 자체도 순조롭지 않았다. 투자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파워 티켓층인 20~30대가 좋아하는 화려한 무대, 반짝이는 의상 등 흥행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 지원금 7000만원(부가세포함)을 받아 제작비를 일부 충당했다.

이종신 뮤지컬꽃신 대표는 "출연배우만 55명이다. 배우 출연료는 재능기부로 대신한다고 해도 의상비, 대관료 등은 재능기부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제작비 조달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지만 한 달 동안 목표액 1000만원 중 모인 금액은 70여만원에 불과했다.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1~10위까지 뮤지컬 예매율을 살펴보면 전부 외국 라이선스 작품들이다. 꽃신은 50위에도 못 든다고 이 대표가 전했다.
연극 '봉선화'의 한 장면 연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연극 작품으로는 'Face'(2013), '빨간시'(2013), '봉선화'(2014),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2014) 등이 있다. 이 중 '봉선화'는 서울시극단이 제작했다. 서울시극단은 시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일반 극단과는 달리 제작비 고민에서 훨씬 자유롭다. 김혜련 서울시극단장은 "대학로에 있는 연출가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제정 러시아 말기의 이야기를 다룬 안톤 체호프의 작품은 너도나도 올리면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한 문제는 왜 무대에 올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작환경이 녹록지 않음에도 문화예술계가 위안부 문제에 눈 돌려야 하는 까닭은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공감의 힘' 때문이다. 위안부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는 문화예술은 보는 이들의 감정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영화든 연극이든 소녀상이든 문화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대중이 할머니들 아픔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안부 문제가 확산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의지에 기대 위안부를 소재로 한 문화예술 작품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CJ문화재단과 손잡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을 공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가부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작품당 25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CJ문화재단 관계자는 "대중이 위안부 소재에 관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로 동참하게 됐다"며 "시나리오 기획안이 영화로 제작될 수 있도록 전 과정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사학위 연구논문 겨우 2편, 학술계서도 찬밥 신세 한편 문화예술뿐 아니라 학술 분야에서도 '일본군 위안부'는 선호하는 주제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문학 제외)은 고작 2편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전개와 문제인식에 대한 연구: 정대협의 활동을 중심으로(김정란, 2004)'와 '일본군 '위안부'제의 식민성 연구 : 조선인 '위안부'를 중심으로(강정숙, 2010)' 등이 바로 그것이다. 두 저자 중 강정숙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정신대연구소 출신으로 이전부터 위안부 문제에 천착해온 인물이다. 이처럼 학계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신진 연구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신진 연구자의 발굴과 출현이 없고 국내 박사학위 논문이 두 편 밖에 없다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연구하고 규명하는 연구가 미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다만 위안부 이슈는 연구의 대상이 되기 전에 국내외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워낙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연구대상이라기보다는 현실적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고 서 연구원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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