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교수라는 지위에도 '위안부'라는 생경한(?) 주제에 매달린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이었다. 1943년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의 전신)에 재학 중이던 그는 '1학년 학생 전원은 본관 1층 염색실에 모이라'는 집합 명령을 받았다. 일본군인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파란잉크로 깨알같이 적힌 A4용지를 나눠줬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감히 묻지도 못했다. 총독부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다. 무조건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지장 찍은 종이를 군인들이 도로 걷어갔다. "정신대로 가는 데 동의하는 거라 생각했지. 그땐 위안부라는 말을 아예 몰랐어."
그렇게 취재한 사연을 토대로 그는 1988년 4월 세미나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일본과 미국의 활동가들이 많이 자리했는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하고 충격받은 일부 참석자들은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