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오후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유희남(85) 할머니는 거실 모퉁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가 자주 앉던 자리다. '현실주의자'라는 말과 함께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유 할머니는 오전엔 배 할머니의 노제에 참석했다. 평소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 공개행사에 잘 나서지 않던 그다. 배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유 할머니는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착용해 얼굴을 꽁꽁 싸맸다.
나눔의집 2층 식당에 놓인 식탁엔 자리마다 이곳에 기거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사진이 유리에 끼워져 있다. 배 할머니가 앉던 자리의 사진은 이날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강일출(86) 할머니의 요청으로 전날 이미 치워졌다. "밥 먹는데 뭐 죽은 사람 사진 보는 거 싫어서 내가 빼달라고 했어." 강 할머니는 평소 배 할머니와 마주 앉아 식사를 했었다. 주인 잃은 자리는 지금도 비어있다. 얼마 전 나눔의집에 입소한 이옥선(87) 할머니도 배 할머니의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에게 죽음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피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이기도 했다.
배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사망자는 183명으로 늘었다. 생존 할머니 수는 54명으로 줄었다가 지난 8일 경북의 박○○(92) 할머니가 추가로 등록하면서 다시 55명이 됐다. 배 할머니는 고(故) 강덕경ㆍ김옥주ㆍ문명금ㆍ김수덕ㆍ박두리ㆍ지돌이ㆍ문필기ㆍ박옥련 할머니에 이어 아홉 번째로 나눔의집에서 생을 마쳤다.





경상북도 성주가 고향인 배 할머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정신대'에 자원했다. 일본 군인들의 성노리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 할머니는 광복 후에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수년간 중국을 전전하다가 1951년 2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성인가요) 가수로 활동했다. 다시 고향 땅을 밟은 것은 1981년. 3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리는 아픔을 겪은 후 1997년 나눔의집에 입소했다.